일본 여행 중 신사를 들렀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모든 곳에 신사가 있지?" 거리 모퉁이마다, 산속 깊은 곳마다, 심지어 회사 건물 옥상에도 작은 신사가 있더라고요. 일본에는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の神)', 즉 800만의 신이 있다는 표현이 있어요. 물론 정확히 800만이라는 뜻은 아니고,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신을 모시게 된 걸까요?

만물에 깃든 신, 애니미즘의 뿌리
일본의 신앙 체계는 기본적으로 애니미즘에서 출발해요. 산, 나무, 바위, 물, 바람 같은 자연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낡은 도구나 일상 사물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거든요. 이런 믿음이 신토의 기초가 되었어요. 신토는 특정 교조나 경전이 없는, 아주 자연스럽고 생활 밀착형 신앙이에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의 작은 신단에 손을 모으고, 여행 갈 때는 지역 신사에 들러 안전을 기원하죠. 신은 멀리 있는 절대자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예요.
이런 신들을 '카미'라고 부르는데, 카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조금 달라요. 어떤 카미는 논밭을 지키고, 어떤 카미는 바다의 풍요를 책임지고, 또 어떤 카미는 학업이나 사업 운을 관장해요. 그러니까 기능별로 신이 세분화되어 있는 셈이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목적에 따라 다른 신사를 찾아가요.
지역마다 신이 다르다, 토착 신앙의 다양성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상 지역마다 독립적인 문화가 발달했어요. 각 마을마다 그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고, 이를 모시는 신사가 세워졌어요. 이런 신사를 '우지가미(氏神)' 신사라고 불러요. 태어나고 자란 마을의 신사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명절이나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가 인사를 드리죠.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신사의 수도 늘어나게 된 거예요.

또 일본은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도교 같은 외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배척하지 않고 신토와 융합시켰어요. '신불습합(神仏習合)'이라는 독특한 종교 현상이 생긴 거죠. 그래서 신사와 절이 함께 있는 경우도 많고, 한 사람이 신토와 불교를 동시에 믿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 유연함이 더욱 많은 신을 받아들이는 배경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신을 모실까
일본인들이 신사를 찾는 모습을 보면 경건하면서도 일상적이에요. 큰 절을 하거나 오랜 시간 기도하기보다는, 간단히 손을 씻고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치고 한 번 더 절하는 참배 방식이 전부예요. 신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구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감사를 표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이런 가벼운 접근이 오히려 신앙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었어요.
특히 인상적인 건 '마츠리(祭り)', 즉 축제 문화예요. 일본의 마츠리는 대부분 신을 기리는 행사인데, 엄숙하기보다는 즐겁고 활기차요. 가마를 메고 거리를 누비고,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춤을 춰요. 신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잔치로 표현하는 거죠. 이런 모습에서 일본인들이 신을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이루는 이웃처럼 대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일본을 이해하는 열쇠
결국 일본에 왜 이렇게 많은 신이 있느냐는 질문은, 일본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과 같아요.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무겁지 않게 일상 속에 녹였어요. 신은 멀리 있는 절대자가 아니라,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자연이고 공동체였던 거죠.
일본 신사를 방문할 때는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 없어요. 다만 참배 방식만 알아두면 좋은데, 입구의 도리이를 지날 때 가볍게 고개 숙이고, 손을 씻는 곳(테미즈야)에서 왼손-오른손-입 순서로 물로 정화한 뒤 참배하면 돼요. 소요 시간은 5분 정도면 충분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어요.
다음 일본 여행에서는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작은 동네 신사에도 들러보세요.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닦아놓은 작은 신사, 나무 그늘 아래 조용히 자리한 돌 신단. 그곳에서 일본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800만 신이 사는 나라, 일본의 진짜 모습은 그런 일상 속 신성함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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